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란 말이 있었다.
제주는 그만큼 넓은 초원이 펼쳐졌으며 말의 서식환경이 좋았다는 것이고 사람은 어찌하든 모여 살아야 뭐 하나라도 배울 게 있고 얻을 게 있다는데서 유래한 말이다.
돌이켜보면 조선시대 인구 변화는 18세기말부터 서울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수도권 밀집현상이나 급격한 이농으로 인해 수도권 과밀지역에 대한 투기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진작부터 있었다.
당시 전국 인구는 740만 정도에 서울 인구가 대략 19만 이었다고 하니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정조 13년 과거시험때는 전체 응시자 중 서울 출신이 45.9%를 차지한 것으로 기록에 적혀있다.
지역별 급제 확률로 볼 때 전국 인구의 2.6%에 불과한 서울이 과거시험 합격자는 45.9%인 점을 보면 어디에 살면서 시험을 준비하느냐가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일까 강남 학군에 유명세를 떨치고 일명 치맛바람의 방향에 따라 학원가의 강사진 몸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기도 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SKY대에서 보는 서울, 서울에서 보는 수도권과 수도권에서 보는 지방대학은 같은 학생들끼리도 위화감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입학생이 모자라 일선 고등학교로 영업(?)까지 나가야하는 지방대학은 이제 줄줄이 폐교 위기를 맞이하고 외려 온갖 명목으로 장학금을 제공하며 학생 모시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찌 해석해야 할까.
그렇게 입학해서 졸업을 해도 지잡대(지방대학의 은어)로 불리는 졸업생들은 이력서 내밀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공급 대비 수요가 턱없이 부족한 취업문은 학력만으로 열리지 않고 인맥이나 기타 방법으로 노크해야 겨우 가능한 실정이다.
교육은 이쯤하고 서울 중심의 예산편성과 불균형이 극에 달해 기형적인 구조로 변해 가는 대한민국의 도·농간 격차가 심각한 상황이다.
좁은 국토 안에서 쓸모없이 방치된 국토가 산적한 반면 좁아터진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집중은 이웃 일본의 30년 전 모습과 흡사하다.
빈집 증가와 고령층의 방치, 국토균형발전법, 얼마나 멋진 단어이며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었던가.
그러고도 뭐가 변했으며 어떤 비전이 보이는가, 물론 무엇 하나 뚜렷한 게 없고 더하면 더했지 균형 잡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빈곤의 악순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한 농촌의 슬럼화는 점차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어 사회적 기반시설인 학교, 교통, 의료, 금융, 백화점 등 모든 분야에서 늦게 떠나는 게 손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도시의 네트워크는 외형상 구분되어 있지만 내면적으로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경제적 흐름도 그러하고 인적 연결 또한 어느 특정 분야만의 독재로 살아남을 수 없다.
물건을 쌓아놔도 구매할 고객이 없어 유효기간을 넘긴 제품들이 버려지기도 하며 음식점이 재료도 신선할 수 없고, 수지타산이 안 맞는 모든 업종들이 보따리를 싸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연령층들, 혼자 마을을 지키며 고향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노년층이 주인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곳, 고독사가 수시로 발생해도 그러려니 하는 시대가 됐고 농촌마다 살만 한 빈집이 증가해도 서울의 좁은 방은 빈곳을 찾기 힘들다.
부동산 거품은 공급과 수요가 적절한 균형을 맞출 때 대안이 생기는 것이다. 죽어라 서울로 몰아넣고 적절한 시장을 유지하려면 어느 대통령이 집권해도 해결될 일이 아니다.
대안이 없을까. 없는데 못하는 것일까. 있는데 안 하는 것일까.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축소판으로 줄여보면 간단하다.
100명의 학생들이 체육대회를 하는데 넓은 운동장 두고 한곳에 몰아넣으면 서로 안간힘을 쓰며 자리 지키기 위해 아우성치기 마련이다.
골고루 활용하면 충분히 여유 있는 체육활동과 각자의 영역에서 특기를 찾을 수 있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돈이 한곳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세금을 거둬 특정지역에만 퍼붓는 출발이 발전의 불균형을 가져오고 이를 배경으로 모여든 인구를 정치적 견해에서 본다면 표가 되는 것이다.
표는 다시 다수의 의석수를 만들고 이들이 도심 중심의 법을 개정하면서 점점 더 기반시설이 풍부한 수도권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대한민국은 국토가 좁은 게 아니라 서울 중심의 집약이 문제이며 이를 알고도 이론적인 탁상공론만 펼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굵직한 공공기관이 전국 각지로 흩어져 고루 발전을 기대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까지도 문제지만 앞으로는 더욱 심각해진다. 집도 사람이 살아야 온기가 있는 것이지 장기간 비워두면 거미줄이 장악하고 멀쩡하던 시설물도 힘을 잃고 만다.
지방으로는 국가기반시설인 도로만이 추가 될뿐 폐허로 변해가는 농·어촌의 미래는 복구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도 없는 농·어촌에 귀농정책이 먹힐 리 없다. 한번 무너진 국토의 불균형은 제 아무리 예산을 투입하고 정책적 지원을 하더라도 갈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안 그래도 저출산으로 불보듯 뻔한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데 도심으로 몰린 늙은이들이 뭘 할 수 있으며 불모지가 된 영토는 누가 지키고 가꿀 것인가.
대안이 있을까. 각 지역별 특색을 살려 대한민국 전역을 지구촌의 관광지로 알리는 것, 한류문화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정부차원의 지원과 현실적 대안, 그 어떤 과학, 군사, 경제적인 비교우위에서도 세계가 주목할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에 비해 그리 내세울 만한 문화유산이나 엄청난 천혜의 장관은 없지만 이 또한 지리적으로 숱한 외세의 침략이 유적을 망치고 민족혼의 맥을 끊어 놓은 것이니 누굴 탓하랴.
해결의 당사자가 현재의 우리인 것을, 개인의 영달보다 후손의 미래를 배려하는 정책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