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시흥시지가 선보인대서 반갑다 함은 천년 역사의 땅 시흥시가 이리저리 내둘리다가 지금 한 모서리를 차지하고 (옛 군자면) 재탄생한 것이니 그러하다.
그것도 70년대 시흥군이 인구 팽창과 산업사회 진입에 따른 행정구역 개편으로 시흥이란 유구한 역사적 전통 명칭이 함몰될듯하다가 당시 행자부 총무과장 이던 이철규씨가(시흥군수, 인천시정부부지사 역임) 서둘러 남의 행정구역인 (부천군 소개면)에서 임시개청, 지금 어엿이 터를 잡아 일취월장 거대 시세로 발돋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까지도 시흥군청은 지금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경인국도 언덕배기에 있었다.
일제 때에는 영등포구의 절반과 대림동 일대까지 시흥시에 속했었다.
하물며 지금 서울에 편입된 경부선 시흥역의 명칭을 보더라도 그 일대는 시흥군 이었다.
1950년 6ㆍ25전쟁이 일어나고 경기도청의 수복과 더불어 영등포에 있던 군청도 행정국이옮긴다 하여 안양시로 옮겼었다.
72년 안양시가 시승격이 되자 군청은 지금의 만안구에 옮겨졌다가 그 후 광명시와 군포, 의왕, 과천, 안산시가 차례로 탄생하자 시흥군은 지리멸렬 공중분해 될 찰나에 소개면에 임시 기거한 끝에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흥시의 이전 역정은 영등포 시대에서 시작하여 반세기 동안 5회에 걸쳤으니 기구한 운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반세기 남짓한 지금 비록 행정면적은 당시의 10분의 1로 줄어들었지만 신장하는 시세는 왕년의 웅군(雄郡)을 재현시킬 기세이니 경하할 일이다.
이때를 점쳐 옛일을 더듬어 천년 역정의 시흥시사(始興市史)를 복원시킨다니 시흥전통역사를 후세에 남게 하려는 의지 또한 반갑다.
그런데 현재의 시정을 중심으로 한다면 내용물도 빈약하거니와 일찬 하여 허술할 것이다.
그러am로 시흥시사는 지난날의 전 행정구역안에 소속했던 안양시를 위시 과천, 의왕, 군포, 광명, 안산 등 9개시를 망라하는 시사(市史) 수록을 권하고 싶다.
지금 거론한 6개시들이 저마다 시사를 편찬하고 있지만 시흥의 전통 역사의 총본산(總本山)이 시흥시인 까닭이다.